인터뷰 _ 읊조리듯 노래하는 가수 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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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작업실이 없다는 그녀를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소녀스러운 긴 치마를 입고 온 그녀는 오늘은 너무 쓰지 않은

것을 먹고 싶다며 카페라떼를 골랐다. 우리는 빛이 잘 드는 테라스의 나무 아래 자리잡았다. 선물한 케이크을 맛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소녀 같았다. 인터뷰를 준비하는 동안 이어폰 너머 익숙해진 노랫소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독특한 목소리와

창법으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노래에 집중하게 하는 그녀가 어떻게 노래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질문. 애리씨 소개를 해주세요.

저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애리입니다.

 

질문. ‘애리’의 뜻은 무엇인가요?

애리의 뜻은 사랑 애(愛) 영리할 리(悧), ‘사랑스럽고 영리하게 살아라’라는 뜻이에요. 제 이름이 좋아요. 애리의 영어식 이름 ‘airy’는

바람이 잘 통하는, 대수롭지 않은, 비현실적인 이라는 뜻이 있어요. 쉽지 않지만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 뜻이 좋아요.

 

질문. 주로 어디 쪽에서 활동하시나요? 음악 작업은 어디서 하시나요? 작업실이 따로 있으신가요?

홍대에서 주로 활동해요. 연습실이 따로 있진 않아요. 홍대나 합정 쪽의 편한 카페나 공연장에서 연습하거나 합주실을 빌리기도

해요. 작년 초에는 몇달 간 상수 쪽에 있는 작업실을 쓸 수 있도록 도움 받기도 했어요. 나오게 된 이후엔 주로 집에서 연습하다가

일렉기타로 바꾸고는 앰프가 있는 곳에서 연습을 하려고 여기저기 찾아 다니고 있어요.

 

질문. 원래 전공은 음악이 아니었다고 들었어요. 언제부터 음악에 관심이 있었나요?

어릴 때 대부분 사람들은 음악을 좋아하잖아요. 그처럼 저도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는 학교 내 음악대회도 나가고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는 음악부 활동을 했었어요. 이십대가 되서였나 어릴 때 썼던 공책을 펼쳐

읽는데 두 장이 한꺼번에 스테이플러 심 몇 개로 찍혀져 있더라고요. 스테이플러 심 사이사이로 보니 제목이 ‘나의 비밀’이였어요.

그때 글짓기 선생님이 ‘오늘은 ‘나의 비밀’에 대해서 쓰는 거고, 너희의 비밀이니 나는 읽지 않겠다.’라고 하신게 기억났어요.

그 땐 안 보일 줄 알았는데 스테이플러 심을 그대로 놔두고 조심스레 벌려 보니까 다 읽을 수 있대요. 그렇게 종이를 요리조리

움직이며 심으로 찍힌 부분 사이로 읽어보니, 가수가 되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근데 말하면 누가 비웃을까봐 말을 못했다고

쓰여있더라고요. ‘나의 비밀’이라더니 정말 잊고 살았어요. 한편 무의식적으로는 알았겠지만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떠올리지 못할 만큼 비밀이 되어버렸던 거예요. 그게 신기해요.

 

질문.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는지궁금해요.

대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음악하고 싶다는 말하는 건 생각도 못했어요. 집안이 엄했고, 무언가에 억눌려 있는 느낌을 받아서 차마

말할 용기가 없었어요. 스무살이 된지 몇달 더 지나 음악하고 싶다고 처음 말했 을 때 부모님께서는 길길이 반대하셨어요.

가족 외 다른 사람들에게도 제가 원하는 것, 생각하는 바를 잘 드러내지 않아 주변에서 제 꿈을 잘 몰랐을 거에요. 제가 아주

좋아하고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조차 ‘네가 관심 있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네 길을 찾아 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어요. 주변 사람들이 제가 속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모르는 건 알았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어요.

영화나 소설 속을 보면 자기 신념에 따라 살든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살든, 그래서 그게 비극이든 희극이든, 여러 인물

과 상황이 나오잖아요. 저는 그런 걸로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걸 재미있어 해요. 그 속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쳐다보기도 너무 아픈 내 모습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살아오면서 그동안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과 교류해서 체득하여 얻은 것들도

많지만, 그런 픽션들이 제 안에 쌓인 것도 많아요. 그런 것들로 앞을 가늠하는거죠. 내가 행복하려면, 마음이 편하려면, 어떻게

해야겠구나 싶은 판단들이요. 그런 면에서 음악을 하는 일에 대해서도 가늠을 해왔던 것 같아요. 이걸 하지 않으면 답답함에 메어

아쉬운 채로 살아갈 거라고.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때 과연 나는 아름다운 모습일까. 그런 고민을 하는 게 긴장의 연속이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내가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이루어지는 일련의 선택들이 결국은 나를 편하게 하는 길이라는 게

역설적이어서 재밌어요.주변반응이 그랬음에도 음악을 하게 된 건 그런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이에요.

 

질문.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

하루 일과는 매번 달라요. 불규칙해요. 공연이 있을 때는 그 전에 몇 시에 잤는가와 상관없이 늦게 일어나더라도 푹 자려고 해요.

공연 당일엔 보통 집에서 조금 연습해보고 리허설 하러 가요. 연습이나 공연 전에는 꼭 밥을 먹어요. 밥을 안 먹으면 힘이 없어요.

밥심이 중요해요. 이번 주말에 홍대 카페 언플러그드에서 커플 가요제라는 걸 하는데, 오늘 인터뷰 끝나고 나서는 커플 가요제에서

저랑같이 듀엣 하실 이권형씨와 연습을 하기로 했어요.

 

질문. 최근에 일렉기타를 시작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어쿠스틱과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저는 ‘어쿠스틱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다’고 국한해서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밴드의 형태나 다양한 길에 서있는 제 모습을

그려왔거든요. 그런데 아예 그렇게 분류되어지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마다 제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고 느꼈어요.

어쿠스틱도 좋지만 그렇게만 국한되는 것에는 이질감이 들어요.

수년동안 홍대에서 이미 활동하고 있던 사람들과 만나 팀을 이루려 합주하거나 곡 작업을 하려는 시도를 해보기는 했지만,

잘 풀리지 않아 막막했어요. 그러다 작업하다 느껴지는 답답함은 너무 당연하니 공연으로 그 갈증을 해소해보라는 얘기를

듣게되었어요. 공연은 표현욕구를 발산할 수도 있고, 피드백이 있으니까 답답함이 덜 하다고.

그래서 일단 어쿠스틱 형태로 공연을 시작하게 된 거에요. 그렇게 제 곡으로 공연하기 시작한지 1년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어요.

언제나 사운드를 보다 풍성하게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그 일환으로 일렉을 시작한건데, 음악적으로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일렉을 앰프에 연결해 연주하면서 여러 시도를 해보는 중이에요. 아직 길을 찾아나가는 데 있어 시작 단계인 것 같아요.

 

질문. 다른 악기도 다룰 줄 아시나요?

기타 외에는 피아노 그리고 장구를 다룰 줄 알아요. 피아노는 학원에 다닐 땐 내 의지로 연주한다는 느낌이 덜 해서 연습하기 싫고

재미를 못 느끼다가 그만 두고 나서야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재미를 붙였어요. 중고등학교 때 가끔 피아노 치는 친구들과 피아노

주변에 둘러 앉아 서로 연주하고 듣고 했어요.

장구는 중학교 때 풍물부를 해서 치게 되었어요. 특히 설장구하며 춤추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틈만 나면 장구 가락과 춤을

연습했어요. 그러다 수장구에 패짱(‘패의 장’이라는 뜻)까지 맡게 되어 열성적이었죠. 그때 우리 학교 풍물부가 서울시 내

중고등학교 풍물부 중 잘 하는 축에 속해서 상도 계속 받고 그랬어요. 대회나 축제 일정이 잡히면 수업도 빠지고 나갔어요.

한 놀이공원에서 큰 축제가 열려 여러 중고등학교 소속 동아리들이 모인 적이 있어요. 우리 학교에서 볼 수 없던 북청사자춤,

상모춤, 태평소 공연에 정신이 팔렸어요. 풍등놀이, 단심줄놀이 하면서 계속 마음이 간질간질하고 웃음이 나고 즐거웠던 것 같아요.

그 전에도, 이후에도 그런 전통축제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저한텐 무척 특별한 추억이에요.

장구를 생각하면 그런게 떠올라요.

 

질문. 도전해보고 싶은 악기가 있다면? 이유는?

베이스랑 드럼. 베이스랑 드럼을 배우면 다양한 리듬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다룰 줄 아는 악기만 해도

아직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어 한동안은 기타에 집중할 것 같아요.

 

질문. 직접 만들어 직접 부르는 노래가 주는 장점은?

하고 싶은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어서 부를 수 있다는 것.

하다못해 다른 가수의 곡을 커버를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원하는 대로 노래할 수 있으니 그 점이 가장 좋아요.

 

질문. 작사, 작곡하실 때 어디서 영감을 받는지?

대학 때 문학회를 해서 그런지 초반에는 시를 쓰는 듯한 작사 방식이 많았어요. 비유를 써서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이야기를

짓는다거나 동화 같은 느낌의 글을 쓰는 게 익숙했어요. 그런데 이후에는 자연스러운 어투로 써보려고 해서 나온, 쉽게 이해되는

가사들도 있어요. 곡은 기타를 뚱땅거리며 놀다가 나올 때가 많아요.

 

질문. 작사 할 때 애리씨의 경험이나 이야기가 반영되기도 하는지.

네. (웃음) 대부분의 노래에 제 경험이나 이야기가 조금씩은 반영되어 있어요.

 

질문. 최근에 앨범이 나왔다고 들었어요. 어떤 앨범이였나요?

테이크아웃드로잉 컴필레이션 앨범은 참여 앨범이었고, ‘B03 레코드’의 기획으로 나온 라이브 레코딩 앨범은 비정규 앨범이었어요.

라이브 레코딩 앨범의 음원은 자주 공연하던 공연장에서,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 앞에서, 평소 공연하던대로, 그렇게 노래한

음원으로 만들어졌어요. 라이브 공연 녹음본이 믹싱과 마스터링을 거쳐서 유통사에 보내져 발매되는 형식이에요. 작년에 라이브를

정말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공연이 많이 편해졌죠. 요즘에는 일렉기타로 바꿔서 예전처럼 편하지만은 않고 처음처럼 긴장이

되는데, 그게 싫지는 않아요. 라이브 레코딩 앨범은 일렉으로 바꾸기 전, 어쿠스틱 기타로 공연할 때 그걸 녹음해서 앨범으로

남겼다는 것에 의미가 있어요.

 

질문. 이제 어쿠스틱은 안 하시는지.

얼마 전 일본 갈 때는 일렉기타가 무거워서 어쿠스틱을 가져가긴 했는데, 지금은 일렉으로 연습하면서 실험을 하고 있고 라이브도

일렉으로 해봐야 익숙해질 것 같아서 당분간 일렉으로만 하려고 해요.

 

질문. 이번에 발매한 테이크아웃드로잉 컴필레이션은 어떤 프로젝트였는지?

테이크아웃드로잉 일에 대해서 알음알음 알고는 있었어요. 작년에 미래가 깜깜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고,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안 좋은 일이 겹치면서, 정체기가 왔었어요. 음악한다고 나와 안 좋은 일들을 연달아 겪으니 앞을 헤쳐나가는

게 더더욱 쉽지 않았어요.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힘든 날이 이어졌어요. 제 상태가 심각하단 걸 인지하고 나서는 가족과

몇 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어요. 고마운 도움들 덕분에 힘을 내게 되면서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공연을 하거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죠. 음악적으로든 뭐든 스스로 힘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던 차에

‘자립음악생산조합’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외부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무작정 조합 사이트에 있는 조항을

읽어보았어요. 매달 조합비를 내면 홍보나 자문을 구하는 요청을 할 수 있더라고요. 큰 공연이 잡히면 조합원으로서 홍보를

요청했어요. 그러다 작년 11월 자립음악생산조합 황경하씨에게 새로운 조합원을 소개하는 일환으로 인터뷰 요청이 왔어요.

그때 인터뷰 장소가 테이크아웃드로잉이었고, 저와 함께 인터뷰한 분이 이권형씨였어요. 이후 테이크아웃드로잉에 자주

가게 되면서 직접 젠트리피케이션에 직면한 공간의 상황과 입장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고, 그 계기로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열리는 공연에 참여하며 연대하게 되었어요. 테이크아웃드로잉 컴필레이션은 자립음악생산조합의

황경하씨의 아이디어였어요. 젠트리피케이션을 겪는 공간에 음악가들이 음악으로 연대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였죠.

 

질문. 테이크아웃드로잉 문제와 같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외에도 의미 있는 공연을 많이 하시

는 것 같아요.

원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기는 했어요. 어릴 때부터 젠트리피케이션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슈되는 것은 나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사회과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그때 공부하는게 재미있었어요. 세상과 사회, 인간, 나에 대해서

알아가는 거라고 느껴서 흥미로웠거든요. 그래서 그런 사회의식을 가지는 것이 익숙하기는 해요. 하지만 학업을 하면서 음악은

유보하고 있었다는 생각 때문인지 학업을 마친 후의 내 인생은 음악에만 집중하게 될 줄 알았어요. 게다가 예전부터 사회적 이슈에

대해 관심은 있어도 좋아하는 것을 향유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것만 해도 바쁜 성향이기도 하고.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만 생각했지 저도 참여할 수 있다고는 생각 못했어요. 단지 마음으로 안타까워하는 정도였죠.

그런데 테이크아웃드로잉에 가게 된 이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어느정도 얻은 것 같아요. 여기, 현장에서 막상

직접 보고 들으니 당사자들의 절박함과 연대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비추어지는 것보다 더욱 잘 알게 되었어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 심정을 그렇게까지는 느낄 수 없거나 그런 시간이 늦춰졌겠죠. 또 내 음악이 사회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더라도 공연이나

앨범에 참여하는 행위로도 사회적 이슈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동시에 변화까지도 요구할 수 있구나,도 알게 되었어요.

내 관심사이자 일이자 놀이인 음악으로도 이런 일에 연대하고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기점이 되었던 거죠.

젠트리피케이션을 포함해 갈등이 있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서 그게 너무나 만연하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테이크아웃드로잉과의 연대 이후로는 누구나 여건이 되는 한에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원하는 만큼 참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예를 들어 법이 사회적 약자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완충적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면,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법대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가 상대적으로 연쇄적인 피해를 덜 입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것 같은 거요. 그렇게 목소리를 내도 상황을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안 내는 것보단 훨씬 낫다는 것도요.

이전에는 머리로만 알던 것들을 체득하게 된 거에요. 생각해보면 흥미롭게 배웠다는 사회과학, 내가 좋아하는 영화, 음악, 글조차도

결국은 세상과 사람들, 나에 대한 이야기어서 이런 문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건데. 배우고 즐기는 걸로 끝나지 않고 제가 이렇게

변화한게 좋고 다행이라는 마음도 들어요.

 

질문. 올해 1월 단독 콘서트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언뜻가게에서 했던 공연 말씀이시군요. 작년에 채널 1969라는 공간에서 다른 팀들과 함께 공연한 적이 있었는데, 끝나고 어떤 분이

말을 걸어주셔서 인사를 나누었어요. 그때 만난 음악가 윤나라씨와 인연이 이어져 언뜻가게 공연까지 하게 되었어요.

언뜻가게라는 공간에 음악가들을 초청해서 여는 ‘부엌 콘서트’가 있는데 공연해보는거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셨거든요.

공연하는 날 밥을 준다는 것도 기뻤어요. 공연 전에는 밥을 꼭 먹어야 하니까. 밥을 먹어야 뱃심이 있잖아요. 안 먹으면 지쳐요.

천휘재씨와 형제 분이 운영하는 언뜻가게에서의 시간은 도란도란스러워 좋았어요. 언뜻가게는 공간의 주인이 자기 공간을

자유자재로 쓰는 듯한 인상이에요.

편하고 자연스럽고 작지만 알찼어요. 그런데 그날 제가 감기가 심하게 걸린 채로 공연했는데, 마지막 곡을 하는 중에 참을 수 없는

기침이 터져버렸어요. 참으려고 하니까 기침이 더 나더라고요. 그 작은 공간이 엄청 숙연해져서 제 기침 소리를 제외하곤 숨소리도

안 나는 것 같았어요. 사람들을 살피니 다들 절 걱정하는 표정이었어요. 제가 차라리 웃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니 그제서야

사람들이 마음 놓고 웃는 듯한 분위기였어요. 조금 쉬다가 다시 처음부터 마지막곡을 부르기는 했는데, 공연 중에 그런 모습을

보인게 처음이라 당황스럽고 너무 창피했어요. (웃음)

언뜻가게에서 한 단독 공연이 처음은 아니에요. 작년에 채널 1969에서 한 단독 공연이 처음이었어요.

세번째 단독 공연은 5월 28일 제비다방에서 있을 예정이에요.

 

질문. 하루 중 가장 시간을 많이 차지하는 일은?

일단 연습은 아니에요. (웃음) 누워있는 거나 조는 거요. 친구들이랑 카페나 술집을 가더라도 졸리면 잠깐 자거나 졸아요.

예전부터 그랬어요.

 

질문. 노래를 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예전에는 공연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자 보람이었는데 점점 욕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기타를 좀 더 다르게 치고 싶다던지.

이렇게 더발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 보람 있어요. 또 구체적인 피드백을 들을 때. 공연을 보고 어느 부분에서 이렇게

느꼈다 어땠다 등등 자세한 근거가 있는 피드백을 들으면 그것이 좋다는 이야기이든 아니든 재밌고 좋아요.

 

질문. 이제껏 해오셨던 공연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공연 하나하나 그때의 광경들이 다 떠올라요.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카페 언플러그드에서 했던 첫 오픈 마이크 공연이에요.

뭔가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이 한꺼번에 몰려 한창 곤두박질치고 있던 중이었어요. 새로운 상황에서 아무런 연고 없이 음악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어요. 내가 원하는 바를 잘 드러내지 않고 살았던 것도 한 몫 했어요. 너무나 혼란스러운데 이런 걸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하거나 원하는 바를 정당하고 단호하게 요구하는 것조차 폐를 끼치는 일처럼 느껴졌어요. 살면서 제일 힘든

시기었어요. 그런 상태에서 개인적인 일까지 겹쳐 하필이면 첫 공연 몇 시간 전에 집에서 펑펑 울었어요.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를

통틀어 동아리 공연 전에는 개인적인 일로 감정이 크게 요동친 적이 없었거든요. 그날 공연 끝나고 얘기를 나눴던 분들 중 한명과

나중에 더 가까워 졌는데, 공연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했더니 전혀 몰랐다고 했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그 공연에서 실수도 많이 했어요. 제 곡을 공연의 형태로 불러보는 게 처음이었죠. 또 밴드부 공연 때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한

적은 있지만 그땐 다른 악기들도 함께였어서 혼자 기타를 치며 공연한 적도 그때가 처음이었죠. 세 곡을 하는데 두 곡에서 중간에

멈췄다가 다시 이어 했어요. 얼굴과 몸이 화끈거리고 창피하면서도 공연이 끝나니 첫 공연을 마쳤다는 성취감도 들었어요.

관객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대여섯 분이 공연 후 제게 와서 한마디씩 해주셨어요. 가사가 특이하다, 곡이 새롭다, 어디 다른 곳에서

살다 온 적이 있느냐, 이국적이다, 국악 느낌이 난다, 또 보러 오고 싶다. 다양한 의견을 듣는게 처음이니 너무 즐거웠어요.

이후에도 자주 듣는 피드백은 대부분 이미 이때 들은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잠깐 장구친 것 외에는 국악에 크게 관심을 갖거나

접해본 바가 없어서 스스로 국악을 잘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후에도 국악 느낌이 난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조금 놀라기도

하면서 흥미로워요. 끌리는 대로 타고 타서 듣다 보니 외국 음악가들의 음악도 많이 들어요. 그래서 국악은 생각도 못했는데

그 얘기를 자주 들어서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하고 내게 많은 영향을 준 외국 음악들에 민요적인 느낌이 있어서 그런 의견들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날이 정말 신기해요. 한없이 추락하고 아파 가라앉았던 마음이 몇시간 만에 창피했다가 뿌듯하고 가볍고 즐겁게 날아다니는

마음이 된 날이니까요.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다양한 감정을 느낀 날이었어요.

 

질문. 본인이 작사, 작곡한 노래 중 특별히 더 애정이 가는 곡이 있다면요? 그 이유는?

전부 다 애정이 있어요. 저마다 다르게.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가는 곡을 굳이 꼽으라면 ‘소나무’. ‘테이크아웃드로잉

컴필레이션’때도 그 곡으로 참여했어요. 지금 공연하는 곡들 중 거의 처음 만든 곡이면서, 밴드 하려고 했을 때마다 꺼낸 곡이기도

하고. 나랑 가장 오래되고 익숙한 친구 같아요. 음악하고 싶다고 밖으로 표현하는 것조차 어려웠을 때 만들어진 곡이어서 마음이

가요.

 

질문. 음악 외에 관심 있는 분야가 있나요?

영화랑 소설, 시를 무척 좋아해요. 공연을 하러 다니기 전에는 상암에 있는 영상자료원에 자주 갔어요. 옛날 영화부터 최근에

개봉했다가 내린 영화를 무료로 상영해주는 곳이에요. 집에서 거의 두시간이 걸리는 거리인데도 몇달 간은 거의 매일 가서 본 적도

있어요. 작년에 전주국제영화제에 놀러갔는데 이번 해에도 갔어요. 가는 김에 공연도 하고. (웃음)

 

질문. 뮤지션으로서 목표가 있다면?

일단은 음악을 계속 해나가는 게 목표에요. 더불어서 어떤 형태로든 내가 원하는 바를 중심으로 두는 것. 워낙 어렵게 시작한 만큼

쉽게 포기하거나 남들이 가라는 대로 무작정 가는 건 싫어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가 납득이 되는 범위에서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싶어요. 아직은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 뭐가 좋은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기준은 있어요. 또 지금은 전혀 상상할 수 없지만 만약

여러 어려움에 부딪혀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온다면 그 때의 내가 기억하길 바라요. 내가 음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음악을 어떻게 힘들게 시작했는지, 음악을 하지 않으면 얼마나 힘들지.

 

질문. 애리씨에게 노래는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가요?

한마디로는 말 못하겠는데. ‘자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음악을 하게 되어 제한된 자유도 있지만 하지 않을 때보다는 제 삶과

상태가 편해졌어요. ‘나’로서 좀 더 편하고 행복해졌으니까요. 또 노래는 제가 좋아하는 것 중에서도 가장 오래됐고 가장 익숙하고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도 해요. 자라오면서 꾸준히 욕심이 생겼었고, 학업을 하는 와중에도 놓지 않고 언제나 계속하고 있었던 것.

이걸로 힘들기도 하지만 하지 않으면 더 힘들 것 같은, 그런 자연스러운 것이에요. 편하고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기도 하죠.

나아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 중 하나도 되고. 저한테 그 의미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도 기대되네요.

 

 

 

그녀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점은 음악 이야기를 할 때 유독 신이 나고 웃는다는 것이었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기까지는 수많은 고민과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부모님의 반대와 학업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노래를

하게 된 애리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편했던 그녀가 무대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곧 있을 그녀의 콘서트에서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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